"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었고 일터에 나가신 어머니 집에 없으면 언제나 혼자서 끓여 먹었던 라면"
치 그래도 엄마라도 있었네.
나의 국민학교 1~2학년 시절의 기억을 적어 보려고 한다. 가난이 뭔지 모르던 시절이었다. 물론 짜장면이 무언지도 몰랐던 시절이다.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의 기억은 무슨 잘못을 했는진 모르지만 아빠를 피해 우리 집 다락방에 몰래 숨어 살던 둘째 고모의 아들이었던 사촌 형이 아빠가 없는 틈을 타서 내려와 끓여 줬던 라면 국밥이다.
라면에 물을 많이 넣고 끓이다 밥과 김치를 넣고 라면이 푸욱 퍼질 때까지 빠글빠글 끓여 죽처럼 되었을 때 한국자 걸쭉하게 퍼억었던 그 라면 국밥. 그 맛은 40이 넘은 지금도 잊을 수 없지만 그 맛을 재현할 수는 없다. 그 맛은 있지만 맛을 만들지 못하는 기억 속에서나 있는 그런 맛이다.
라면 국밥을 특별한 음식이라 기억하는 내 기억 속에 우리 집이 가난했었는지 내 몰골이 어떠했었는지와 같은 내가 자란 환경에 대한 기억은 많이 없다. 단지 어느 순간이었던가 나에게 잘해줬던 사람과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줬던 사람 그리고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만이 토막이지만 내 머릿속 영상으로 남아있다.
국민학교 1학년 때 일이다.
겨울 방학을 앞둔 어느 날 학교 교실에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이 모두 모여 있고 나는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 그 시절 나는 수업시간에 화장실에 가겠다는 말을 하지 못해 앉은자리에서 오줌을 싸거나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가다 똥덩어리가 바짓가랑이를 타고 떨어지는 일을 저지를 만큼의 소심한 아이였다. 소심해서 그런 것인지 그런 나를 친구들이 싫어했었는지 모르지만 국민학교 4학년 전까지의 내 기억 속에는 친구라는 얼굴이 잘 없다. 단 한 녀석의 기억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불안에 떨고 있던 그 일을 함께 당했던 한 녀석 J만 빼고.
겨울 방학 전 우리 반에선 나와 J만 빼고 불우 학우 돕기 모금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불안에 떨었던 그날 선생님은 나와 J를 교탁 앞에 불러 놓고 따뜻해 보이는 잠바를 나와 J에게 입혀 주셨다.
"이번에 우리 반 아이들이 불우 학우 돕기 모금을 했다. 그래서 그 돈으로 니들에게 따뜻한 잠바를 준비했단다. 겨울 동안 따뜻하게 입고 다니렴, 돌아서서 도움을 준 친구들에게 인사하렴"
짝짝짝 짝짝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 숨고 싶었다. 나와 J는 단지 엄마가 없을 뿐이야. 왜 내가
그 겨울 그 따뜻한 잠바는 옷장 깊숙이 틀어 박혀 한 번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그 후 어찌 되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들의 선행이 타인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한 반이었던 친구들은 알까? 지금도 자신들은 추운 겨울 따뜻하게 입고 다닐 잠바를 친구에게 선물해 준 착한 어린이라고 생각할까?
J를 제외한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같은 반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 미안하지만 나를 슬프게 했던 기억의 영상으로 남아있다.
국민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오후반 이였을 것이다. 교실에서 자리를 잡고 수업을 준비하던 나는 어느 순간 몇 명의 아줌마들의 손에 이끌려 학교에서 10분남짓 거리의 우리 집으로 끌려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일 나가신 아버지, 고물을 주우시던 할머니는 출타 중이셨던 것 같다.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던 아줌마들이 나에게 온갖 저주를 퍼붓더니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나는 수업이 시작된 지 한참 지난 교실에 들어갔고 선생님께서는 나를 부르셨다.
"무슨 일 있었니?"
"모르겠어요 제가 자기 애 자전거를 훔쳐서 집에 숨겨뒀다고 우리 집에 가서 뒤졌어요."
"그 아줌마들 누구니?"
"모르겠어요"
"울지 마라. 괜찮다. 들어가라"
조각 기억이지만 나에게 자전거 도둑이라는 누명의 씌운 사람은 1학년 때 함께 잠바를 받은 J였고 그 아줌마들은 다른 반 아이의 엄마와 그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이 기억을 내가 아프게만 기억하지 않는 이유는 선생님이다. 산 만한 덩치에 목소리가 굵던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내가 집으로 끌려가던 10분남짓의 시간과 집 뒤짐을 당하던 시간 그리고 울면서 돌아갔던 30분남짓의 시간 동안 대충의 사태 파악을 하셨는지 딱 2번의 질문과 "울지 마라. 괜찮다. 들어가라" 세 마디 하셨다.
그러곤 아무런 기억이 없다.
단지 2학년 담임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누명을 씌워도 아무렇지 않게 당해야 하는 나였지만 내편이 되어준 나에게 잘해줬단 선생님으로 기억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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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적고 보니 두 분 다 나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한분은 나쁘게 한분은 좋게 기억하고 있는 걸까?
홍준표 자유 한국당 대표가 경남도지사 시절 아이들 무상급식 반대하며 가난을 증명하라고 할 때 가장 생각났던 사람이 1학년 담임이었고 세월호 희생자 부모인 김영오 씨 단식 때 문재인 대통령이 동조 단식을 하는 걸 보면서 생각났던 사람이 2학년 때 담임이었는데
감정은 내가 느끼는 거고 그 감정에 따라 오래된 기억이니 편집되었을 수도 있다.
온갖 나쁜 짓을 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과 어떻게든 함께 살아보겠다고 노력하는 사람들(내 기준에서)을 한 세상에서 보다 보니 내 오랜 기억들도 내 좋을 되로 편집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 시절 그 기억들을 엮어줄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기억나는 건 J 뿐이니.
J는 전학을 갔다 전학을 왔다 해서 찾기도 힘들겠지. 전문가를 부를 만큼 찾고 싶은 기억은 아니니 패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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